어느 날/가쉽들...2013. 12. 22. 10:26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즘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독재자로 알려진 인물로 영웅적인 포즈로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대부분의 사진이 다 손든 사진이다.

 

그는 국가 파시스트당을 창당하고 192년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국무총리를 지녔던 인물로 무솔리니는 최고통치자를 뜻하는 두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무솔리니는 스스로 제국 제일 원수 계급을 제정하고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3세와 함께 이 칭호를 이용하여 이탈리아군의 통수권을 행사하였다.

 

 

 

 

1943년 연랍국에 패배한 후 도주하여 망명 정부인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고 그 수반이 되어어 국가주의, 협동조합주의, 생디칼리즘, 팽창주의, 사회진화론, 반공주의와 같은 다양한 정치 이념들을 조합하여 이탈리아 파시즘을 만들었다.

 

1924년~1939년까지 무솔리니는 폰티네 습지의 개간과 같은 공공사업과 대중교통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성과를 보였으며 이탈리아 제국 전반의 경제적 안정을 실현하였다. 또한 라테란 조약을 통해 로마 문제라 불리던 로마와 바티칸 시국 아이의 문제도 해결하였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무솔리니는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였다. 무솔리니는 1935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한 프랑스 이탈리아 조약을 체결하는 등 프랑스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1940년 들어 외겨적 위치를 바꾸어 추축국의 일원으로 가입하였다.

 

추축국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1943년 연합국에 패배한 뒤 도주하여 망명정부를 세웠으나 1945년 4월27일 첩 클라라 페타치, 그리고 파시스트 당의 심복들과 함께 함께 독일군 상사로 위장하고 독일군을 따라 스위스로 도주하다가 코모 호반에서 이태리 공산당 파르티잔들에게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무솔리니 연인 클라라 페타치

 

여자 관계가 문란한 무솔리니의 마지막 연인인 클라라 페타치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로서 처형 당했을 때 무솔리니 보다 29세나 젊은 33살이였다.
그녀는 교황 주치의였던 의사 아버지를 둔 상류 가정의 딸이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길을 걷다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무솔리니와 클라라 페타치의 처형 모습

 

 

공산당 파르티잔들은 28일 이들을 처형하고 29일 그 시체들을 밀라노로 운반해 와서 어느 주유소에 정육점의 갈쿠리에 매달아 전시했었다. 이 끔찍한 장면들은 세기적으로 유명한 뉴스 보도의 초점을 받았다. 무솔리니와 같이 전시된 다른 시체들은 그와 같이 도주하다가 체포 되어서 같이 총살당했던 무솔리니의 추종자들이다.

무솔리니는 처형당시 독일군 하사관 복장을 한채 처형당했다.

무솔리니나 페타치등의 시체가 심하게 훼손 된 것은 파르티잔들이 이들 시체들을 군중들에게 내주고 돌 팔매질과 발길질을 하게 허용했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렐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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