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가쉽들...2014. 2. 14. 10:36

 

 

2월 14일....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인 발렌타인데이기도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의장대 사열을 마치고 나오는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리를 저격했고 3발을 명중시킨 후 만세를 부른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군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후 그는 6회에 이르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14일 중국 뤼순의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해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사형당했습니다.

 

 

지금까지 발렌타인데이에 가려진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

 

 

지난 13일 '썰전'에서 김구라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언급하면서 "2월 14일은 31세의 나이로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라고 말해 개념 발언 연예인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30세의 나이로 순국 후 아직도 고국으로 못돌아 오고 있다고 합니다.


독립 후 독립운동을 이끈 백범 김구선생은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목숨을 내던진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서울에 효창공원을 조성하고 독립투사들의 유해를 찾아와 안장하고 그 정신을 기리고자 합니다.

 김구선생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의사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고 맨 왼쪽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어,  유해를 찾아와 묻어주겠노라 약속합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마저 암살당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 송환은 그대로 잊혀졌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북한과 공동으로 중국의 협조아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했었고, 2007년 들어서 여러차례 실무접촉 및 자료수집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까지 추정하여 탐색작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이후 북한을 배제한 남한의 일방적인 추진이 있었으나, 중국의 비협조로 실패한다.

 

그렇게 방치하는 사이, 안중근 의사가 묻혔다고 추정되었던 뤼순감옥 뒷산은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모두 파헤쳐져서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현재 서울 효창공원에는 세분의 독립투사의 묘와, 김구선생의 묘와 함께

어쩌면 영영 주인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를 안중근 의사의 빈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발렌타인데이라고 서로서로 초콜릿을 주고받기보다는
  독립운동에 힘쓴 애국지사들과 안중군 의사에 대해 다시한번 마음에 되새겨보는 의미있는 날이였으면 합니다.
 
 






Posted by 렐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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