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가쉽들...2013. 7. 21. 11:46



Jacqueline Kennedy Onassis

 

비운의 퍼스트 레이디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뉴욕 근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바사 대학교와 조지 워싱턴 대학교, 프랑스의 파리 대학교에서 공부한뒤 워싱턴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녀는 기자로서 활약하면서 뉴포트 사교계 파티에 데뷔해  1951년의 사교계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존 F.케네디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1953년 9월 12일에 그녀는 24세의 나이로 뉴포트에서 37세의 JFK와 결혼 및 8년후엔 1961년에는 1961년 남편 존에프게네디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30대 초반이라는 어린나이에 영부인이 되었습니다.

 

 

 

 

 

 

 

 

 우아한 기품을 가진 그녀는 퍼스트레이드로서 미국뿐 아닌 외국에서도 큰인기를 얻었으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마를린 먼로와의 염문등 바람기 많은 케네디로 인해 즐겁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였으며, 존에프케네디 대통령인 1963년 살해당하면서 34세의 젊은 나이에 미망이이 되었습니다.

 

캐네디의 장례식을 마지막으로 5년이라는 세월동안 대중앞에서 사라졌습니다.
JFK 사망후 미국인들은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조용히 두 자녀 를 키우며 살아가는 미국의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주기를 바랬으나 재클린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오던 그리스 대부호인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1968년에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오나시스는 권력이 필요했기때문에 재클린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쯤에서 오나시스가 누군지 궁금해 지겠죠~

오나시스는 본래 그리스 국적이나 아르헨티나 국적의 대선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이 계기가 되어 해운왕국을 구축하였스며 사우디정부와 석유수송 독점계약을 맺어 세계 해운업계와 석유업계에 군림하였습니다.

터키의 부유한 담배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오나시스는 1922년 터키가 점령해 재산을 다 잃고 그리스로 탈출합니다. 그리스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이주 하였으며, 아시아 지역의 담배,양털,피혁 등을 취득하는 수입상을 경여하면서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됩니다. 이 후 중고 선박들을 헐값에 사들여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해운업에 진출을 하게 되었고 1939년에 그리스 최초로 유조선의 선주가 되었습니다. 이 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에 협력을 하면서 많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 후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아들 명의로 뉴욕에 해운회사를 설립하여 유리한 미국 국가의 선박과 공공단체의 선박을 사들였고 유조선 건조융자 등을 통해서  오나시스 해운왕국을 세우게 되었으며, 6.25 전쟁 시기에 전쟁 특수로 해운업이 붐을 타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됩니다.이 후 오나시스는 사우디정부와 서유수송 독점계약을 맺고 전세계 해운업계와 석유업계에 군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JFK와 마찬가지로 바람기 많은 오나시스와의 결혼 생활을 후회한 재클린은 그와 이혼 소송 절차를 밟던 중 1975년 오나시스가 사망하여, 또 다시 미망인이 되었답니다.

 


 

 

 

이후 오나시스 사망 후 미국으로 다시 건너와 사회에 진출해 출판 관계 일을 하면서 뉴욕에서 저술 활동과 자선 사업을 하며 지내며 벨기에 출신의 보석상인 모리스 템펠스만과 교제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결혼하지 않고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함께 살다 결국 1994년에 사망하였습니다.

 

비운의 영부인...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재클린은 두명의 남편과 세명의 자녀가 자신보다 먼저 죽게되었으며, 5명의 자녀중 4명도 현재 죽고 장녀인 캐럴라인 케네디만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자녀는 패트릭 부비에 케네디(태어난지 이틀만에 사망), 아라벨라 케네디(사산으로 사망), 존 F. 케네디 2세(비행기 사고로 사망), 의붓아들 알렉산더 오나시스(비행기 사고로 사망)이 있습니다.


 




Posted by 렐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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