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가쉽들...2013. 10. 29. 08:01

 

 

 

하지원 주진모 주연의 '기황후' 시작되었다!

기황후...생소환 이름이다.

 

기황후는 중국 원 나라 혜종의 황후. 고려 출신으로 공녀로 원 나라로 보내졌다가 황후가 되었으며 북원 소종의 생모이다.

 

고려 출신으로 몽골명은 올제이 후투그 시호는 보현숙성황후이다.

본관은 행주이며, 기자오의 딸이다. 공녀로 원 나라 조정으로 보내져, 1333년 고려 출신의 환관 고용보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다.

혜종(재위 1333~1368)의 총애를 받아, 1338년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라를 낳았다.

 

혜종은 기씨를 총애하여 1335년 킵차크 출신의 다나슈리 황후를 일족의 반란 사건을 이유로 폐위시키고 기씨를 황후로 삼으려 하였다. 하지만 조정의 실권자인 바얀이 이를 반대하자, 1337년 옹기라트 부족 출신의 바얀 후투그를 황후로 삼았다. 그러나 1338년 기씨가 아유르시리다라를 낳자, 그 이듬해에 그녀를 제2황후로 책봉했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배경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녀는 재정과 번위를 맡아보는 황후 직속 기관인 휘정원을 자정원으로 개편하여 고용보를 초대 자정원사로 삼았다. 그리고 1353년 자신의 아들인 아유르시리다라를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동향 출신의 환관 박불화를 군사 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로 삼아 군사권도 장악하였다. 이렇듯 기황후가 원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풍속이 크게 유행하였다.

 

'기황후' 초상화

 

 

한편, 고려에서는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을 필두로 한 기씨 일족이 기황후의 배경을 믿고 권세를 휘두르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책으로 주살되었다. 그러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 원 나라에 있던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을 왕으로 삼기 위해 1364년 고려 출신인 최유로 하여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려를 공격케 하였다. 그러나 최유는 고려의 명장인 최영에게 대패하였다.

이 무렵 원 나라 조정에서는 황태자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정쟁이 격화되었다. 기황후는 혜종의 양위를 받아 황태자를 황위에 앉히려 하였는데, 1364년 반 황태자파 장군인 볼라드 테무르는 도성인 대도를 점령해 기황후를 사로잡았다. 황태자는 타이위안에 주둔하고 있던 코케 테무르에게 피신하였고, 이듬해인 1365년 대도를 공격하여 볼라드 테무르를 죽였다.

 

1365년 제1황후인 바얀 후투그가 죽자 기황후가 정후가 되었으나, 황태자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으로 원의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였고, 각지의 반란 세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결국 1368년 주원장은 반란 세력을 통일하여 명 나라를 세우고 북벌을 단행하여 대도를 점령했고, 이로써 원은 멸망하였다. 혜종과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라 등은 상도로 피신하였다가, 이듬해 다시 응창부 지금의로 퇴각하였다. 1370년 혜종이 죽자 아유르시리다라가 북원 소종으로 즉위하였다. 몽골 지역으로 패퇴한 뒤 기황후의 행적은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한편, 한국의 경기도 연천군 상리에는 기황후의 묘로 알려진 고분이 있다. 실제 기황후의 묘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1656년 반계 유형원이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에도 ‘속전원순제기황후묘’라며 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이전부터 이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작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기황후' 어떤식으로 풀어갈지 기대해보며 하지원의 여걸 황후의 모습도 기대 됩니다.

 

 






Posted by 렐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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