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가쉽들...2013. 11. 2. 23:18



아르헨티나의 어머니이자 에비타(Evita)라는 애칭으로 불리운 비운의 배우 '에바 페론'..


그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의 농장에서 태어났으나 사생아라는 이유로 생부인 후안 두아르테에게 버림받고, 어머니 후아나 이바르구엔과 함께 후닌으로 옮겨와 가난한 생활을 하다 학교 연극과 연주회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15살인 1935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연예계로 진출하게 됩니다.


에바페론은 모델로 활동하다가, 연극배우,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차츰 이름을 알려 1940년 경부터 유명 연예인이 되었고,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연예인으로 생활하다 1944년 산후안의 지진으로 구호기금을 마련하던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인 후안 페론과 함께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아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성녀'로 존경 받기도 한 그녀는 남편의 대통령 선거 유세 자리에 동행하며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었으며, 후안 페론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1946년 6월 정식으로 취임하면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됩니다.




에바는 정부 내에서 공식적인 직책에 오른 적은 없으나, 노동자 및 하층민들에게 후한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사실상의 보건부 장관 자리에 있었습니다. 1947년에는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였으며, 대통령인 남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였으며, 스페인에서는 가난한 아동들에게 구호 활동을 펼쳤고 프랑스에서는 샤를 드 골을 만나 식량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의당의 분파인 여성 페론당을 결성하여 그 대표로 있었면서 여성 참정권 도입 등의 여성 운동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노동단체, 기업 등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학교, 병원, 양로원 등을 건립하고 각종 자선사업을 하는 데 쓰여지며 민중의 지지를 받아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빛나던 에바페론도 1952년 7월 26일 33살이나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녀의 병은 바로 척수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죽기전까지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숨기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에바페론이 사망한뒤 아르헨티나 대중들은 에바 페론의 죽음을 광적으로 애도했으며, 한달 간의 장례식은 국민들이 바치는 꽃으로 뒤덮혔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의 죽음과 함께 생전에 펼치던 복지정책의 문제점등으로 이중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아직도 아르헨티나에서 그녀는 약한자의 편에 섰던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로 기억되고 있다고 합니다.







Posted by 렐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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