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가쉽들...2013.11.17 09:49

 

 

 

루트비히 2세의 상상이 현실이 된 노이슈반타인 백조의 성!

 

 

유럽의 지붕 알프스의 거대한 산맥 북쪽 언저리 퓌센이라는 작은 마을...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슬픈 사연이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Neuschwanstein' 이 있습니다. 일명 백조의 성으로 아려진 아름다운 성이 있습니다.

어렸을때 이 성 사진을 보고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이 성이 실제의 성이라는 소리는 듣고 놀란적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이 성을 보기위해 많은 광관객들 찾고 있는 독일의 관광 명소 입니다.


흰 색과 베이지 색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중세의 우아한,

정말 동화속에 나올 법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성의 슬픈 사연은 무엇일까요?

 

 

 

디즈니 동화속 아름다운성의 노이슈반타인성의 왕 루트비히 2세
 
1845년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2세와 프로이센 공주 마리 사이의 장남으로 내어난 루트비히2세 무서운 아버지이자 절대군주 막시밀리안의 아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어릴 때부터 여성적이며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루드비히는 검술이나 기마 대신 연극과 오페라를 매우 좋아했으며 음악, 시, 미술과 같은 예술의 세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왕으로 즉위하고 나서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궁전이 있는 뮌헨보다는 별장같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좋아했습니다. 결국 건축을 공부, 나중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직접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성년이 되면서 키 190cm의 꽃미남으로 성장한 루드비히 2세는 아버지가 죽자 18세의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출중한 외모 때문에 유럽의 왕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있었다고 합니다. 키가 커서 그런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가보면 당시 루드비히의 침대의 길이는 210cm 나 되고, 문마다 손잡이가 보통 사람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높이 달려있습니다. 루트비히는 왕이 되었으니 결혼을 해서 빨리 후사를 봐야했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여제의 동생인 쇼피 샤를로트와 약혼, 결혼날짜까지 정해놓고 황금마차와 기념주화까지 준비했지만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돌련 파혼을 해버렸습니다.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2세의 가족

왼쪽의 소년이 루트비히 2세, 그의 어머니 마리, 아버지 막시말리안, 동생 오토

 

 

약혼녀였던 바이에른 공녀 쇼피 샤를로테 폰 비텔스바흐

 

 

 

파혼의 이유는 바로 루드비히 2세의 삶을 이야기할때 빠질 수 없는 사람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때문이었습니다.

 루드비히 2세가 동성애자....

 

바그너는 루드비히 2세를 만나기 전, 유랑극단의 악단장으로 연주활동과 소규모의 오페라를 공연하였지만 신통치 못하였으며, 대표작인 <탄호이저>까지 흥행에 실패하면서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61년 루드비히 2세가 16살이 되던 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면서 바그너의 열정적인 팬이 되었고, 2년 뒤 루드비히가 왕이 되면서 한낮 가난한 무명의 음악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바그너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고, 루드비히 역시 그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빚에 시달리던 무명의 음악가에게 나타난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2세는 그야말로 기적처럼 나타난 구세주였으며, 바그너에 대한 열정에 가득 찬 군주로서 그의 앞길을 터주기 시작했습니다. 빚을 모두 탕감해주는 것을 물론 바그너가 음악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모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 은혜로 충만하신 왕이시여! 천상의 감동에서 솟아난 눈물을 당신께 바침으로써, 그리도 비천하고 애정에 굶주려왔던 제 가련한 인생이 품고 있던 시적 경이감이 드디어 지고한 현실이 되었음을 당신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이 인생의 마지막 한 단어까지. 마지막 한 음계까지. 저의 인생은 당신께 속해있습니다.'
 
바그너는 왕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왕의 바그너에 대한 열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갔는데요, 왕은 성의 대부분 벽화를 바그너의 작품들로 장식하게 됩니다. 바그너는 이후에 왕과 더욱 친해져 왕의 친구가 되었으며, 때로는 왕의 신임을 남용한다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사실 이 음악가에 대한 젊은 왕의 애정은 처음부터 어린애다운 면이 있었습니다. 바그너는 왕에게 친구이자, 아버지의 애정을 느낀 것입니다. 결국 루드비히 2세에 대한 바그너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고 '두명의 왕이 다스리는 바이에른' 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루드비히를 매료시킨 것은 음악가 바그너가 아닌 시인 바그너였습니다. 바그너는 특유의 격렬한 어조와 강렬한 시로 젊은 루드비히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결국 왕은 자신이 직접 짓는 성을 바그너의 오페라로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오페라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를 너무나 좋아하여 성 안의 문고리와 벽화, 커튼의 장식까지 모두 백조로 꾸몄습니다. 또한 콘서트 홀은 바그너의 오페가 가운데 <영웅전>의 배경이 장식되었습니다. 거실에는 오페라 <파르치팔>의 등장인물들, 거실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동굴을 인공으로 만들어 놓았을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방들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니벨룽의 반지>등 바그너의 오페라 회화들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성은 바그너를 위해 지어진 성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죠.


 

당시 정세는 매우 급박했습니다.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전쟁을 일으키고 뮌헨의 귀족들이 왕권을 장악하려고 음해를 펼치는 등 루드비히 2세에겐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워낙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을 가졌던 왕은 뮌헨을 떠나 퓌센에서 은둔하면서 자신의 설계한 꿈의 궁전을 짓기에 몰두합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노인슈반슈타인 성, 린더호프 성, 헤렌킴제 성입니다.

그는 성 건축에 병적인 집착을 하였는데, 가장 집착하고 좋아했던 노이슈반스타인성은 17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바그너를 존경했던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영감을 얻고 성을 건축하였는데, 그 중 유명한 성이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린더호프 성이였다.

 

 

 

 

헤렌킴제성은 그가 좋아한 루이14세의 성 베르사유를 모티브로 지어진 성

 

 


 

 

 

루트비히 2세의 린더호프 성

 

 


그는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굉장히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내가 죽게 된다면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파괴시켜라."
그가 사랑하는 이 아름다운 성을 구경거리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영원히 묻겠다는 뜻이였다.
그는 성이 미완공임에도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그 기간은 매우 짧았고 그는 겨우 6개월 밖에 지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신병과 프로이센에 대한 배상금, 성 건축으로 인한 국고 탕진으로 정부가  루드비히 2세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주치의가 나서서 반박했고, 왕실의 충신들은 '루드비히 2세가 꿈속에 빠져 사는 괴짜일지언정 미친 사람은 아니다.' 그를 두둔했으죠.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로 치달아 정적들은 마침내 그를 '정신병자'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왕이 기거하던 노인슈반슈타인 성으로 병사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당시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왕을 보호했고, 왕을 납치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결국 성에 몰래 잠입한 병사들에 의해 뮌헨 남쪽의 Berg성으로 끌려가 감금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루드비히 2세는 41세의 나이에 Berg성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주치의인 구텐박사와 함께 호수에 빠진 채 변사체로 발견된 루드비히 2세, 1886년 6월 13일의 일이었습니다.
 
 

 
 
뮌헨에서는 루드비히 2세가 박사를 죽인 후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여기에는 오늘날까지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루드비히 2세의 뛰어난 수영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키가 190센치에 육박했던 거구체격의 루트비히가 허리높이밖에 안되는 얕은 수심의 호숫가에서 익사를 했다는 점, 구텐박사가 이날따라 경호원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지시한 점, 발견 당시 구텐박사의 머리에 난 상처, 그리도 무엇보다도 루드비히 2세의 폐에서 물이 발견되지 않았죠. 그러기에 아직도 루드비히의 죽음은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그가 익사한 채로 발견된 슈타른베르크 호수.

 


 
그가 살아있었던 동안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공상가에 미치광이로 불리고 성 건축으로 국고를 다 탕진하여
무능한 왕으로 기록되었지만, 지금 그가 세운 성들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있다.
오늘날 바이에른의 사람들은 루트비히 2세를 매우 아끼고 좋아하며 존경하고 있다.

 

 

루드비히 2세는 분명히 역대의 왕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동화 같은 성을 짓는데 혈안이 되있었고, 가끔은 노인슈반슈타인 성에서 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한 썰매를 타고 내달려 주민들을 놀라게 했으며, 혼자 밥을 먹기 위해 자동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식탁을 개발하는 등 기행에 기행을 거듭한 괴짜였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신하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애쓰고, 지역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며,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멋진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스리던 지역의 주민들만큼은 루드비히 2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왕은 그런 충성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죽어서도 후손들에게 막대한 관광 수입을 벌게끔 해주었죠. 사실 루드비히 2세의 성들은 오늘날 독일 최고의 테마 여행코스로 꼽히고 있지 않은가요. 노인슈반슈타인 성이 없었다면 퓌센이란 마을을 우리가 알 턱이 있을까요?

 

루드비히의 인생이 담긴 노이슈반슈타인 성, 이곳은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으로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그래서 더욱 성스러워 보이는 곳입니다.

 

 






Posted by 렐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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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규리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십여년전 프랑크프르트에 업무차갔다가 왕복8시간 기차타구 구경갔던기억에 젖여봅니다.
    이런사연이 있는줄알고갔더라면 좋았을껄싶네요
    퓌센.기차역두 조그만 작은도시..다시가보고십ㄱ어지는 글이네요

    2013.11.19 08:51 [ ADDR : EDIT/ DEL : REPLY ]